봄비의 의지

봄비가 겨우내 잠들어 있는 땅을 토닥이며 속삭이듯 말합니다.
어서, 일어나 봄의 기운을 맞으렴.
그러자 땅이 봄비에게 묻습니다.
넌 왜 나를 깨우려 애쓰니?
봄비가 말합니다.
너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꽃씨를 보아서야.
어서 새순을 돋아내어 꽃을 피워내렴.
내가 너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 도와줄께.
어서 꽃을 피워내렴.

꽃씨가 새순을 내고, 꽃으로 피어나는건
햇볕과 땅, 꽃씨의 의지가 아닌 그것은 진정 봄비의 의지입니다.
봄비가 되어 당신의 마음에 숨어있을 꽃씨를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내려는 나의 의지가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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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으면

만약 당신이 나에게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요?"
라고 묻는다면
"물이 되죠" 라는 진부한 답은 하지 않을거에요.
왜냐면, 눈이 녹으면 봄이 되니까요..

당신의 맘 속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눈을 녹여줄
따뜻한 봄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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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으로부터 받은 사이트 리뉴얼에 관한 질문과 답변

지인으로부터 사이트 리뉴얼에 대한 질문들을 받아 이에 대한 답변을 보내드렸는데요. 저급한 수준의 답변일지도 모르나 다른분들께도 도움이 될까하여 공유해봅니다.

1. 왜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빽해서 보면 리스트가 조금씩 틀리게 보이는데 왜 이렇지?

어떤 조건으로 조회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제 환경에선 그런 현상이 없는 점과 조회 요청을 전송하는 방식이 post인 점, 그리고 페이징 번호는 get 방식으로 전송되는 링크로 구성되어 있는점으로 미루어 보면, 개발자가 뒤로가기로 post 방식으로 요청한 페이지를 다시 불러올 때의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코딩을 하였거나, POST와 GET 방식에 따라 파라메타 처리 방식이 다른점이 몇 생길수도 있는데 그부분에 대한 고려없이 코드를 작성했거나, 마지막으로, DB로 요청하는 쿼리의 페이징 처리 부분에 오류가 있을수도 있겠군요.

2. 데이터량이 많아서 검색해서 보여 줄 때 다르게 보이는건가?

데이타량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며, SQL 쿼리 또는 페이징 처리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 것 같다고 추청됩니다.

3. 그리고, 총 2346 페이지에 각 페이지 20개씩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 대로 계산하면 계산해 보면 46,920명인데, 화면에는 이렇게 나오는데 나머지 인원은 어디에 있을 것 같아?

제가 조회한 시점에는 전체 2,348 페이지, 70,431명으로 조회되었습니다. 물론, 이 결과도 오류 투성인데요. 전체 인원수가 70,431명이고 한 페이지에 20명씩 나온다고 한다면, 전체페이지의 수는 3,522가 될것이고 맨 마지막 페이지엔 11명이 리스팅되겠지요. 선생님의 조회 결과를 보면 전체 페이지수가 2,346인데요. 이 경우라면 전체 인원수를 정확히 46,920명이라고 단정할수 없고, 46,901~46,920명이라고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전체 페이지 수에 따라 추정되는 총인원수 범위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70,376명이란 결과가 화면에 나온건 아마도, 리스팅될 사람들을 조회하는 쿼리의 where 절과 sum()을 조회하는 쿼리의 where 절의 불일치로 기인한 것으로 추청됩니다. 한마디로 참 허접스럽게 코딩을 했다는 결론 말곤 ...

4. 어쩌면 이 일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기존 업체가 입력시킨 인명및사료 데이타를 못받을지 몰라. 이럴 경우 일일이 캡춰해야 되는데 좀 편하게 이 데이터를 자동수집할 방법은 없을까?

크롤링 봇으로 전체 리스트 페이지를 수집한 후, 그 수집된 HTML 페이지를 파싱해 데이타를 추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할 것 같습니다. 파싱은 HTML 트리 분석 같은 복잡한 기술 없이 단순히 스트링 패턴 분석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감회가 남다르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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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친구들

너 피아니스트의 전설 봤니?
아니.. 피아니스트의 전설? 그게 뭔데?
엄청 감동적인 영화인데 못 봤단 말야.. 이 영화 꼭 봐.. 내 생애 최고의 영화였어..

동화책 한권 추천할께. 혹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나이에 왠 동화책이냐.. 제목이 뭔데?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인데. 난 이책을 '어린 왕자'이후로 읽었던 동화책들 중에 최고의 책이라 생각해.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봐. 꼭.

이렇게 친구가 극찬하며 추천해준 영화나 책을 보거나 읽지 않고 있으면 뭘해도 개운치 않다. 그래서 아주 잠시간의 여유라도 생기면 가장 먼저 그것들을 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라면 나를 실망시킬 확률은 그만큼 줄어드는건 당연한 법이니까.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있는 기억들을 만드는 것 그보다 행복한 일도 없을테니까.. 내게 공유하고 싶은 기억들을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친구야. 난 너네들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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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

신을 찾아 뵙기를 갈망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반드시 자신의 피조물들을 살펴보고 돌아보며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을 찾아 나섰다.
그는 숲으로 갔다. 숲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그는 나무들에게 물었다.

"나는 신을 만나고 싶어. 신은 어디에 있니?"

한 나무가 대답했다.

"신은 저기 빛나는 태양이예요. 태양은 항상 우리를 비춰주어 끊임없이 우리에게 살아갈 생명을 나누어주지요. "

그는 나무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은 빛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로 갔다.
드넓은 바다에 갈매기들이 날아다닌다.

'그래.. 갈매기라면 온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신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을꺼야..'

그는 갈매기에게 물었다.

"갈매기야. 신을 본적이 있니? 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갈매기가 대답했다.

"신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요. 신은 바로 '바람'이랍니다. 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우리가 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어요. 당신도 이 세상을 날아다니고 싶지 않나요? 신을 만나서 그 힘을 나누어 받으세요. 그러면 당신도 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답니다."

그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려 노력해봤지만 조금도 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바다를 떠나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그가 서 있다. 저 아래에 산과 도시와 바다와 숲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신은 없었다. 하늘위를 올려다보니 구름과 달과 별들이 보였지만 신은 없었다. 그는 실망했다.

'이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아. 다 거짓말이야'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목소리다. 깜짝놀라 방문을 열어보려고 하니 웬 노파가 그를 붙잡는다. 노파가 그에게 말했다.

"이봐.. 어딜 갔다 이제야 오는가? 여하튼 다행이구만. 너무 늦지는 않았어.. 자네 아내가 아이를 낳고 있거든. 어서 가서 따뜻한 물이나 떠오게"

그는 정신이 없었다. 물을 떠오고 수건을 가져오고.. 노파가 이것저것 시키는 것을 가져다주느라 땀에 흠뻑 젖었다.
이윽고 노파가 사내아이를 안고 방에서 나온다. 그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노파가 뒷걸음질 치는 그를 붙잡고 그 손에 아이를 안겨준다. 노파가 말했다.

"자네 아이야. 자네가 창조한 아이라고.. 어서 보게나.. "

"내가.. 창조했다구요..??"

"허허허. 그럼 누가 만들었겠나? 자네와 자네 부인이 만든 아이지. 자세히 보게나.. 자네의 형상과 꼭 닮지 않았는가?"

그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쌍꺼풀진 눈과 야무진 입술, 작은 코.. 분명히 자신과 꼭 닮아 있었다. 그는 아이를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이야기는 나의 절친 중 한명인 미가라고 불리는 친구가 지어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 중 한편입니다. 썩혀 두기엔 너무 아까운 글인것 같아 이곳에 올립니다. 그의 직업은 가정방문교사이며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 자처하지만 삶의 면면들을 보면 그는 진정 유신론자에 가까울만큼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매우 보기 드문 신앙관을 가졌습니다. 만약 그가 여자로 태어나 내 앞에 나타났더라면, 난 분명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것 입니다. 나는 이 친구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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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을 주는 꺄르르님의 글

꺄르르님의 글에는 항상 그렇진 않지만 어떤 깨침이 있습니다. 그럴때면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읽곤 하죠. 그런데 가끔은 뭐랄까.. 이분은 마치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친 도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우리네와 다른 어떤 경지에 오른 성인 군자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생각이 들면 꺄님의 글은 좋은말로는 성인군자의 느낌으로 나쁘게 말하면 잘난척 떠들어대는 고리타분한 학자의 느낌을 받습니다. 읽는 독자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물론 전자이겠지만, 가끔은 후자의 느낌이 강하게 올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글은 때로는 딴나라 이야기로 읽히지요. 저는 글재주가 뛰어나지 않지만 독자로서 한가지 충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꺄님의 글에서 인간미가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읽을때 꺄님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는것이 옳은지에 대해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는 동질감을 느낄수 있다면 더 많은 깨침을 주는 글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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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것은

지난주 토요일 오후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마음 속의 어떤 한 문제 때문에 가벼운 내용의 책이었음에도 글이 문자들의 냐열로만 보일뿐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책을 덮고 멍하니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방안의 먼지들이 나풀거리며 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째깍거리는 탁상시계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마음 속에 풀리지 않던 문제로 괴로웠던 나는 그런 고요한 적막함이 느껴지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져오는듯 했다. 그 고요함에 빠져 있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방 문을 열어쟂히며 소리쳤다.
"삼촌!"
역시 조카였다. 가족들 중 내방을 제방 드나드듯 하는 사람은 7살 먹은 조카 녀석뿐이다.
"삼촌이 다른 사람 방에 들어올 땐 노크를 해야 한다고 했잖아."
나의 이런 다그침에 그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문을 닫고 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똑똑..
"삼촌. 들어가도 되요?"

지금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절이다는 단순한 이치를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간에 지켜져야할 예절이며, 물리적 공간뿐만 아닌 마음의 공간에도 적용되는 예절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다른이의 마음 속 한 구석이라도 차지하고 들어가려고 할때도 노크가 필요하다. 그 한 구석이 아주 조그마한 공간이더라도.
그 노크가 어떤 형태일지 난 아직 모르겠지만, 평온하기만 하던 나의 마음에 알지도 못하는 초면의 어떤 사람이 불쑥 들어오려고 할때 내가 그를 거부하는 것은 자명한 것이며, 그행동은 무례함을 넘어 범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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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요인

IBM의 창업자이자 전 CEO였던 토마스 J. 왓슨은 성공은 실패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지. 과연 그럴까? 세상엔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업가도 수없이 많다. 물론 내가 말하는 실패의 범위는 사업에만 국한한다. 삶에서의 자잔한 실패는 누구나 겪는것 아닌가. 이런 실패마저 포함시킨다면 모든 실패는 성공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발명가 에디슨이 말했듯 99% 노력과 1%의 영감이 성공을 이루는데 필수요건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분의 글이 말하듯 영감은 우리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신이 내려주는 우리가 제어할수 없는 불확실성의 어떤 것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이것을 행운이라 규정했다. 즉, 제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99%의 노력을 다해 일을 하더라도 신이 또는 환경이 1%의 행운이 따라 주지않는다면 그는 성공에 이를수 없다. 아. 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참혹한 논리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떤 일을 도모하기에 앞서 가장 크게 고려해 보아야할 부분은 환경적 변수가 아니겠는가. 불명확성이 될만한 요인들이 얼마나 있는가, 또 그것들을 얼마나 줄여갈수있는가를 따져 본후 그 일을 시작해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런 결론이면 우울하다. 그의 글대로 긍정적으로 보자. 우리가 99%의 노력을 다한다면 1%의 행운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므로, 1%의 행운이 없더라도 그것은 결단코 실패가 아닌 성공이리라. 이상 「행운과 불명확성」을 읽고 즉흥적으로 써보았다. 즉흥적인 글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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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용자들이 오픈 웹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둘까요?

페이스북은 사용자수가 10억명 돌파를 앞두고 있고 1천억 달러의 시장가치에 달함으로 인해 거대 소셜네트워크의 지배는 오픈 웹의 쇠퇴와 추락에 대한 오랜 우려를 다시 일깨우고 있습니다. John Battelle는 단체 결성을 위한 순수 열린 인터넷을 위한 메니페스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창하지만 배태랑 블로거인 Robert Scoble는 지금은 이미 늦었고 자신은 그 투쟁을 이미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랜 경력의 기술 조사와 투자가인 Esther Dyson는 인터넷은 오픈과 폐쇄를 순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폐쇄적 모델이 성공적인가의 판단은 그러한 제약을 기꺼이 참아내고 견뎌낼 사용자의 의지가 결정할 문제일 뿐입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폐쇄적 웹의 극명한 장단점 모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오픈웹은 거의 모든 사용자들에게 기본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통제된 컨텐츠와 서비스를 주력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포털사이트 중에 하나인 아메리카 온라인은 다이얼업 사업과 재휴된 서비스를 사용하는 전통적 고객에 의해 사용되는 거의 모든 사업을 재고했습니다. 구글은 사용자를 자신의 사이트에 묶어두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 목적인 알고리즘과 책무를 내새운 오픈웹의 모델이었습니다. 웹사이트들과 블로그들은 WordPress, TypePad, 또는 Blogger와 같은 오픈 플랫폼에 의해 운영되었고, 어느 누구나 어느 곳이든 링크할수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처음부터 대학생들의 접근을 통제하는 극한의 "gated community" 접근방식을 취했습니다. 페이스북의 성장과 확장에 따라 사용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더 어렵게하며 그들의 네트워크에 머무르게 만드는 사용자들에게 편리한 walled-garden(역주. 통제된 컨텐츠와 서비스를 주력으로 제공하는 형태. 담벼락이라고도 번역되는 것 같으나 확실치 않음)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 종종 구글도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타 울타리 정책에 대한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Do users really care whether the web is open or not?」를 번역하다 중간에 관두었습니다. 괜찮은 읽을거리인것 같아 시도해보았지만, 문장과 용어들이 제겐 어렵고, 대충할바엔 안하는게 나을것 같기도 한데다, 무엇보다 기력이 없어져 중단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여기까지 해놓은게 아까워서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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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기 #1

어제와 오늘 연일 라디오에서 새학기와 관련된 사연들이 줄을 잇는걸 보니 오늘이 새학년이 시작되는 첫날인가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축하해주세요.
내짝꿍은 어떤 아이일지 기대되요.
아이가 새 학교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에요.
언제나 새학년의 시작과 관련된 사연엔 기대와 설렘이 묻어나고, 그 사연들을 들으면 누구에게나 정겨운 풍경이 그려지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인지 그렇게 살갑게 다가오지만 않는다.
나의 유년시절 학교생활은 딱 5년뿐이다. 국민학교만 5년 그것이 전부인데 또래 아이들보다 3년이나 늦게 국민학교에 입학하게된 나는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2학년부터 시작했고 나머지 1년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다르다 못해 매우 독특한 나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할땐 빼놓을수 없는 곳이 있다. 그곳은 미국에서 온 한 선교사님이 1953년 전후경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고아들을 맡아 보살펴 키우기 위해 설립했던 고아원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고아들이 점차 줄어들었던 이유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재활 치료를 받는 병원 같은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곳이었다. 그 무렵, 나는 그곳에 맡겨져 키워졌다. 아빠의 말씀에 따르면 그 당시엔 전국을 통틀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치료를 돕는 전문기관이 전국에 몇곳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돌이 지나고 3살이 다 되도록 혼자 앉아있지도 못하고 고개조차도 못 가누는 내가 뭔가 큰병이 걸렸다고 생각되어서 엄마와 아빠는 나를 들쳐업고 서울의 큰병원은 물론이고 가보지 않은 병원이 없을만큼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녔다. 물론 엄마, 아빠는 서울의 큰병원에서 나의 병명을 이미 진단받았지만 치료법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리라 난 확신한다. 의사의 모든것이 무너질듯한 그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가늠할순 없지만, 생각하면 나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다. 그렇게 용하다고 하는 점집과 온갖 곳까지 드나들다 마지막으로 가게된 곳이 그 고아원이었다. 당시엔 전화도 없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물어물어 찾아가셨다고 한다. 내가 그 곳에 갔을 땐 이미 내 또래 아이들이 여럿 있었고, 서양인 선교사님들과 의사선생님도 여럿 계셨던터라 엄마, 아빠는 내가 곧 나을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났었다고 한다. 그후 엄마와 아빠는 만 3살된 나를 치료를 위해 그곳에 맡겨두고선 생업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언젠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때 내가 엄마의 품을 떠나는 것이 싫어 몇시간이 지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그렇게 울어대는 물덩이를 때어놓고 떠나야만 했을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으리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렇게 난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나게 되고 그곳에서 그렇게 오랜동안 머무르게 될진 그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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